가습기 살균제 파동부터 살충제 계란, 침대 라돈 검출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감지되는 유해 화학물질의 위험성은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케모포비아’를 자아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화학물질을 일절 사용하지 않겠다는 ‘노케미(No-Chemi)’족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양대학교 해양융합공학과 문효방 교수는 환경, 야생동물, 인체의 유해물질 노출을 평가하고, 이를 저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왔다.
환경과 생태계, 인류를 치유하는 HEAL
문효방 교수가 이끄는 휴먼·생태분석연구실(Human & Ecology Analytical Laboratory, HEAL)은 사람의 건강과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환경에 잔류하는 유해물질을 분석하고, 위해성을 평가하는 연구실이다. 주요 연구 분야로는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 다매체 거동 평가, ▲야생동물을 이용한 바이오모니터링 기법 개발, ▲첨단분석장비를 이용한 비표적스크리닝 분석기법 개발, ▲내분비계장애물질(EDCs) 다매체·다경로 인체 노출평가 등이 있다. 문 교수는 환경, 생태, 인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에서 화학물질의 거동과 생물축적을 연구하고, 다양한 환경오염물질이 생태계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현재까지 인간은 1억 개가 넘는 화학물질을 생산해왔습니다. 지금도 매일 5천여 개의 화학물질이 신규로 등록되고 있죠. 이렇듯 급증하는 화학물질의 노출은 현대인이 겪는 다양한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유해물질 중에는 노출 즉시 사람에게 영향을 나타내는 물질도 있지만, 아주 오랜 시간 생태계에 잔류하며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그룹이 있다. 문 교수는 이렇듯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주는 차세대 오염물질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오염물질은 특정 지역을 넘어 지구 전체로 퍼져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전지구적 오염물질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간 차세대 오염물질을 중심으로 환경분석 분야에서 국내외 220여 편의 논문을 게재해온 그는 지난해 11월 제3회 써모피셔환경분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신규 POPs 표준분석방법 개발, 특별관리해역 POPs 오염실태 정밀조사, 환경유해인자 노출에 의한 임신출산계 질환 영향 규명 기술개발, 소방공무원에 대한 유해물질 노출평가 파일럿 연구 등을 수행 중이다. 또한, 사단법인 코리아팝스포럼(Korea POPs Forum) 대표이사를 비롯하여 한국환경분석학회 부회장, UN 산하 스톡홀름협약 POPs 검토위원, 사단법인 안산녹색환경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사과정 당시 지도교수님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이옥신이라는 물질을 분석하신 분이셨어요. 다이옥신이 쓰레기 소각장을 통해 대기 중으로 확산되는 문제가 이슈가 되던 시기였죠. 환경과학의 관점에서 다이옥신을 연구하다 보니 이 물질이 대기, 강, 토양을 통하여 해양으로 유입되고, 수산물에 축적되어 결국엔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프로세스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환경으로 배출된 유해물질이 생태계로 이동되는 과정을, 다시 사람을 향하는 연구를 이어왔습니다.”
대기에서 해양으로, 해양포유류에서 사람으로…침묵의 봄을 깨우기 위한 연구 이어와
문효방 교수가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계기는 종교적 이유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아름다웠던 지구 환경은 인간의 등장으로 훼손되기 시작했다. 문 교수는 그 첫 번째 행위가 농업이라 말했다. 특정 생물을 잘 자라게 하기 위해 탄생한 농약은 점차 생물의 다양성을 해치고, 생태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내용은 1962년 레이첼 카슨이 발표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도 등장한다. 이는 문 교수가 환경 분야 연구를 선택하게 된 두 번째 계기이기도 하다. 침묵의 봄은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와 농약인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에 노출된 새는 배란이 되지 않아 출산되는 새끼 수가 줄게 되어 봄이 와도 울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하면서 독성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문 교수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이 환경을 파괴했다는 관점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했듯 환경과 인간 사이를 보호하고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환경 분야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출간 60주년을 맞이한 침묵의 봄은 문 교수가 연구 중인 환경독성학과 환경분석화학 분야의 시초라 불린다.
박사과정 당시 다이옥신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펼쳤던 문 교수는 1999년 해양수산부 산하 국가연구기관인 국립수산과학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임용된 후 10여 년간 관련 연구를 펼치다 2009년 한양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2005년 미국 뉴욕에서 파견근무를 하던 당시 시애틀의 해달(Sea otter) 집단 폐사 연구를 시작으로 상어와 새, 거북이, 고래, 바다표범 등 야생동물의 체내에 오염물질이 어떻게 축적되는지 추적하던 그는 대기와 해양 환경을 주로 다루던 연구에서 해양포유류 유해물질에 관한 연구로 주제를 확장했다.
“해양포유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환경독성학은 야생동물에게서 발견된 현상을 함의를 갖고 해석해 인간에게 적용합니다. 일례로 10개월 간의 임신·출산 과정과 1년간의 모유수유를 통해 화학물질이 어미 고래로부터 새끼 고래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인간과 동일하죠. 자연스레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며 인체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식 토대로 화학물질에 대한 통합적 관리방안 제시
문효방 교수는 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얕은 지식’을 얻고, 이를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해왔다. 그는 하나의 물질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도 물론 학문적으로 큰 의미가 있지만, 1억 개가 넘는 화학물질들이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에 대한 관리방안이 무엇인지 연구하며 환경과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연구 목표라 힘주어 말했다.
“1999년 다이옥신 이슈와 함께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규제를 시작하며 우리나라 대기 중의 다이옥신 농도는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규제가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반면 해양의 관점에서는 어떨까요? 답은 ‘변화 없음’입니다. 화학물질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이동했을 뿐이거든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현상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10년 후, 해양에서도 다이옥신 검출량이 확연히 떨어집니다. 규제에 따른 효과가 10년이라는 속도 차가 있었던 거죠.”
문 교수는 화학물질 관리에 있어 어느 한 측면만을 바라본다면 해석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다이옥신 규제 효과에 대해 어느 한쪽은 성공적이라 평가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성과가 없었다는 분석을 내놓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는 화학물질 관리를 위해서는 총론적인 관점에서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그가 다매체·다경로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다. 여러 분야에서 나온 결과들을 한데 모아 총체적 영향과 흐름을 해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저는 얕은 지식을 굉장히 선호합니다. 정부에서 화학물질 연구에 투자하는 이유는 화학물질이 환경과 생물,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얇고 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린 후에 관리방안을 논의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죠. 그리고 그 시작은 육상과 해양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 있습니다.”
최근 등장한 ‘원 헬스(One Health)’라는 개념 또한 이러한 문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원 헬스란 사람과 동물, 생태계 사이의 연계를 통해 모두에게 최적의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다학제적 접근이라 풀이할 수 있다. 문 교수는 어떤 사건의 인과관계를 찾을 때 사건에 몰두하기보다 넓은 관점에서 두루 살펴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화학물질에 관한 문제를 풀기 위한 다부처, 다분야간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따르는 만큼 학계가 먼저 다매체·다경로 연구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신념은 그의 학회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유일의 환경부 산하 유해물질 학술단체인 사단법인 코리아팝스포럼은 국제 규제물질인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의 연구동향을 수집하고, 관련 정보를 교환하며 국가적 대응을 마련해간다. 2021년부터 코리아팝스포럼의 대표이사를 역임 중인 문 교수는 학술대회 자리에 학자와 학생 외에도 다양한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해 현재의 동향 등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이는 화학물질의 관리를 위해서는 통합적 관점이 필요함을 피력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변화하는 소비자와 기업, 지속가능한 미래 위한 청신호 켜져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우리나라의 환경문화나 환경관련 제도가 완벽하게 바뀌었습니다. ‘노 데이터, 노 마켓’이라는 화학물질 관리 정책의 기조에 따라 소비자가 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죠. 인식의 전환도 상당합니다. 예전에는 안전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안전하다고 판단하던 데서 정보가 없다면 위험하다는 인식으로 변화했습니다. 변화된 소비자들로 하여금 결국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효방 교수는 ‘시민과학’이라는 표현을 제시했다. 소비자가 주체가 되어 과학에 참여한다는 의미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소비자들은 하나의 컨센서스를 만들고, 학자들은 이를 규명하며 학문의 발전을 이끌어간다. 경험으로부터 연구주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문 교수는 정부를 변화시키는 것은 국민이고, 회사를 변화시키는 주체는 소비자라며, 똑똑한 국민이자 소비자들은 보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러한 시민과학의 활성화를 위해 자신의 연구들을 일반 대중은 물론 초등학생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수준으로 발전시켜 대중에게 다가가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모든 환경 문제는 지역에 있습니다. 지역의 환경 문제는 지역의 전문가가 해결해야 하죠.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 몸담고 있는 만큼 다음 세대의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역 전문가들을 길러내고자 합니다.”
지난 4월 문 교수는 안산녹색환경지원센터장으로 취임했다. 시화호가 안고 있는 환경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설립된 안산녹색환경지원센터는 지역의 환경 문제는 지역의 전문가가 해결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그대로 입증하는 곳이다. 지역 환경 문제 해소를 위한 연구개발사업과 기업환경지원사업, 교육정보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다. 문 교수는 시화호가 자리한 안산은 대표적인 수도권 공업도시로 우리나라 산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라며, 시화호의 환경 문제는 지역의 문제인 동시에 세계적 문제라 말했다. 제자들에게도 늘 ‘Globally Think, Locally Act’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그는 시화호의 환경 문제 해결을 통해 마련한 다양한 해법을 세계에 전할 것이라 말했다.
“화학물질 관리는 정말로 중요한 이슈입니다. 다만 규제라는 방식으로는 허점까지 관리할 수 없는 만큼 그 관리 주체가 정부가 아닌 기업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화학물질의 해결방안은 기업에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의미에서 ESG 등 최근의 흐름은 아주 유의미한 변화라 생각됩니다. 저는 더 큰 변화를 위해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환경 문제와 화학물질 이슈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통합하여 알릴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하며 로컬이자 글로벌 문제인 환경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겠습니다.”
박소연 기자 psy@monthlypeople.com
http://www.monthlypeo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7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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