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형 드론 네트워크 공격, 무인 로봇 공격 등의 우려가 커짐에 따라 새로운 방어무기 개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으로 빠른 속도로 다수의 소형 무기를 무력화해 적군의 스마트 공격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초강력 펨토초 레이저 플라즈마가 떠올랐다. 광주과학기술원의 고등광기술연구소는 기존의 기초 연구용 초강력 펨토초 레이저의 복잡한 구조와 진공 챔버 등을 단순화하고 안정화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초강력 레이저 국방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4페타와트 레이저 시스템 등 세계적 수준의 광 관련 연구 인프라를 갖춘 것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전략적 연구, 산업적으로 유용한 융합연구, 그리고 세계적 수준의 탁월한 연구를 지향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고등광기술연구소의 연구자를 만났다.
광과학과 광기술로 미래를 선도할 고등광기술연구소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는 정부에 의해 설립된 국내 유일의 광기술 전문 기초 및 응용 연구기관이다. 우수한 광과학 및 광기술 연구진을 집중시켜 원천핵심기술과 응용기술을 개발하는 광기술연구소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2001년, 광주 광특화단지 활성화를 통한 광산업발전을 위해 광주과학기술원 부설 연구소로 설립되었다.
연구소는 초강력 레이저를 비롯해 국방용 광섬유 레이저, 광 정밀측정 기술, 레이저 정밀 가공 기술 등 우수한 연구 역량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초강력 레이저 연구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출력의 초강력 레이저와 세계적으로도 몇 대 되지 않는 4페타와트 이상의 초고출력 레이저를 개발해 운영한다. 최근에는 세계 최고 세기의 레이저 집속에도 성공하며 플라즈마 물리 현상, 전자가속, 감마선 발생 등 더욱 넓은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올리고 있다.
초강력 레이저 플라즈마는 가속기와 비교해 훨씬 작은 규모로 저렴하게 극초단 엑스선, 고에너지 전자빔, 이온빔 및 감마선 등을 만들 수 있고, 필라멘테이션을 일으켜 킬로미터 이상의 장거리를 전파할 수 있어 앞으로도 응용성이 매우 크다. 고에너지 입자빔은 방사선 암 치료에 응용할 수 있으며, 극초단 엑스선 감마선은 초정밀 의료 영상이나 원격 위험물 탐지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초강력 펨토초 역시 크기와 무게가 작아 부스 형태나 이동형으로 만들 수 있고, 이를 의료, 안보, 환경 분야에 적용할 기술로 개발하면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연구소는 광과학과 광기술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관련 연구시설을 고도화하여 기초과학, 전기·전자, 정보·통신, 기계·소재, 생명·의료, 국방·안보, 항공·우주, 에너지·환경 분야 등과의 융합연구를 적극 도모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광기술의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세계를 선도할 대한민국 미래의 중심에 광주과학기술원의 고등광기술연구소가 든든히 자리할 것이다.
미래 스마트 국방기술, 초강력 레이저 플라즈마 연구개발 착수
고등광기술연구소의 최근 연구과제는 2021년 방위사업청의 재원(63억)으로 국방과학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수행하는 미래도전 국방기술 연구개발사업인 ‘전자 장비 무력화용 초강력 레이저 및 레이저 플라즈마 기술 개발’ 과제로, 이는 초강력 레이저를 이용해 소형 드론이나 무인 로봇 같은 전자 장비를 무력화하는 국방기술을 개발을 목표로 한다. 김형택 연구원을 필두로 한 연구팀은 원리 증명 수준에 머물던 초강력 펨토초 레이저 플라즈마 방어무기의 실체화에 나섰다. 이제까지의 레이저 무기는 통상적인 연속발진 레이저를 주로 사용해 누적한 열로 물체에 손상을 주는 방식이었는데, 이러한 방식은 기술의 핵심인 레이저를 물체에 장기간 조사하고 집속하는 정밀 추적 집속 장치를 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에 초강력 레이저는 한순간 모든 물체를 이온화시켜 손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1000조 분의 1초를 뜻하는 펨토초 단위의 장치로 공기 중에 레이저 빛을 쏘면 이온화와 비선형 집속이 동시에 일어나며 수백 마이크로미터(μm, 100만분의 1m) 크기의 필라멘트 플라즈마가 발생하고, 이 플라즈마가 레이저 진행 경로 내의 소형 드론이나 미사일 센서 등을 손상시키는 방어무기가 된다. 김 연구원은 통상의 레이저 무기가 적을 밀어서 넘어뜨리는 기술이라면, 초강력 레이저 플라즈마 무기는 적 무기의 핵심 부위에 순간적인 공격을 통해 무력화하는 기술이라고 표현한다.
“초강력 레이저는 마치 사이키 조명처럼 번쩍하며 순간적으로 강한 세기의 레이저 펄스를 발생시킵니다. 저희가 연구하는 초강력 레이저의 경우는 이 펄스 폭이 수십 펨토초이고, 번쩍할 때의 순간 출력은 테라와트가 넘는 수준입니다. 1000조 분의 1초를 뜻하는 펨토초는 화학 반응에서 원자가 움직이는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에요. 전 세계 전력 생산량에 해당하는 막대한 파워인 테라와트로 원자의 세계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찰나의 시간 동안 지구적 크기의 파워를 순간적으로 발산하는 레이저 기술이 바로 초강력 레이저 기술입니다.”
펨토초 레이저는 중금속에 조사하면 ‘고강도 전자기 펄스(EMP)’를 발생시키는데 EMP는 전자회로에 과전류를 유도하여 통신, 장비, 컴퓨터, 전산망, 군사용 장비 등을 마비시킨다. 또, 초강력 펨토초 레이저의 방향을 빠르게 회전시키면 공중에 일종의 플라즈마 방패를 형성할 수 있는데, 방패 면적 내를 통과하는 공격 무기의 핵심부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물론, 초강력 레이저 기술은 가장 최근의 신기술인 만큼 파괴력 면에서 포탄이나 미사일을 직접 타격하는 기존의 레이저 무기를 따라잡기까지는 더 많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형 드론에 의한 군집 공격 및 다수의 소형 미사일 집중 공격의 경우, 핵심 부위를 빠르게 타격해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미래형 무기에 대응하는 신기술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올해 5월, 김 연구원은 본격적으로 팀을 꾸리고 연구 수행을 위한 ‘초강력 레이저 플라즈마 응용 연구 센터’를 개소했다. 센터는 미래 도전 국방기술 사업을 통해 2021년 방위사업청의 재원으로 국방과학연구소를 통해 5년 동안 63억 원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연구를 수행한다. 미래 도전 사업 연구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초강력 레이저 플라즈마 기초 연구에서 실제적인 응용 분야에 접목하는 기술 개발로 단계를 밟아나갈 계획이다.
“독일 막스 본 연구진과 함께 국내에서 처음으로 레이저 플라즈마 엑스선 레이저 발진에 성공했을 때와 처음 페타와트를 만들고 전자를 가속해서 신호를 포착했던 순간들이 기억납니다. 이제 막 개소한 연구 센터가 가야할 길은 멀고, 아직 기초 연구 단계인 만큼 첨단무기가 만들어질 시기를 언급하기에는 이른 면이 있지만, 모두가 연구를 향한 열정과 진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기에 자신도 있습니다. 우리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15년에서 20년 후쯤에는 초강력 레이저 무기를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플라즈마 엑스선 레이저, 페타와트 개발 등 오랜 노력이 빛으로 다가온 순간들을 기억하며 초강력 레이저 및 플라즈마 기술의 실용화 연구를 계속해나가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전한다. 이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국방 분야에 성공적으로 접목해 언젠가 초강력 레이저를 이용한 국방기술 개발 분야에 세계적인 First Mover가 될 그때를 함께 기대해 본다.
20년 가까운 초강력 레이저 연구는 멈추지 않는 호기심 덕분
레이저를 향한 김형택 연구원의 관심은 어린 시절 접한 로봇 만화나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형형색색의 레이저였다. 특히, 스타워즈 시리즈를 좋아해 광선검이나 레이저 무기 등에 열광하는 소년이었다고. 어렸을 때부터 키워온 흥미는 전공으로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레이저가 복잡한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매력을 느꼈고, 초강력 레이저와 플라즈마 물리를 전공으로 선택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2005년부터 분야 연구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17년 경력의 레이저 분야 전문가로 거듭났다.
레이저와 그가 맺어온 관계에서 알 수 있듯 김 연구원의 연구목적은 주목받는 연구 실적을 내거나 유명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연구 분야를 향한 마르지 않는 애정과 진심으로 세상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학자로 남고자 한다.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고민하고, 파고들며 해결하는 과정이 다시 연구를 지속하는 원동력이 된다. 남의 연구를 조금 변형하거나 당장 주목받을 만한 연구 결과를 내는 일은 어렵지 않고, 손쉽게 유명한 실적을 쌓을 수는 있겠지만 과학의 발전에는 기여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연구 철학이다. 자신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연구로 가치 있는 일들을 지속하는 것. 새로운 생각, 새로운 방법, 새로운 장치를 제시하며 과학발전에 도움이 되는 과학자가 되고자 한다.
“‘궁사’라는 말을 종종 사용해요. 말 그대로 궁금해서 죽겠다는 의미로 제가 지은 말인데요. 저는 무언가에 호기심이 생기면 참지 못합니다. 제대로 알게 될 때까지 끝까지 찾아보고 공부하는 성격이죠. 그래서 공부와 연구는 힘들고 어려운 한편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을 주는 존재예요. 연구는 이제 제 숙명과 다름없습니다. 결과를 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림에 조금 힘들더라도 행복한 제 연구가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 연구원은 앞으로도 초강력 레이저를 이용한 국방 응용기술 개발뿐 아니라 이를 활용한 물리 현상 연구를 지속하는 동시에 초강력 레이저 플라즈마 내의 극한 물리 환경에서의 원자나 원자핵의 변화에 관한 연구로도 범위를 넓혀나가고자 한다. 국내에도 200페타와트를 뛰어넘는 차세대 초강력 레이저 시설이 구축되고, 물질의 생성 원리, 핵변환, 우주 플라즈마 등 새로운 연구 분야로 확장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다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초강력 레이저 분야의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방향을 점검하고 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국내의 레이저 기술은 부분적으로는 선진국에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수준을 자랑하고, 초강력 레이저 개발 및 응용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역량을 자랑하지만, 전반적으로 기초연구 등 일부 분야에만 집중되어 있고,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 학계 저변이나 산업 기술이 낮다는 아쉬움이 있다. 고등광기술연구소 연구팀이 개발 중인 초강력 레이저도 상당수의 핵심 부품을 미국과 유럽에서 도입하는 실정인 데다가 국내 레이저 관련 시장이 좁아 레이저를 직접 개발하는 국내 기업도 찾아보기 어려워 장기적인 미래를 위한 개선책들이 필요하다.
레이저 분야는 대한민국 국가 핵심기술을 구성하는 반도체, 바이오, 초정밀가공, 국방무기 제조의 후방산업으로서, 국가 핵심기술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산업이다. 다행인 것은 과기정통부에서 2022년 국비 예산으로 초강력 레이저 인프라 시설 구축 연구를 위한 기획연구 예산을 15억 원 반영했고, 이에 따라 올해 2월 초강력 레이저 기술 개발 및 인프라 구축 추진을 위한 전략 수립 및 기획연구 과제를 발주했다. 또, 예비타당성 절차 등을 거쳐 연구시설 건립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기적인 국가 정책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를 비롯한 광주의 광산업단지와 전남테크노파크 레이저센터 등 공동의 노력이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을 기점으로 한 원천기술 확보로 첨단산업을 선도할 대한민국의 미래를 앞당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박소연 기자 psy@monthlypeople.com
http://www.monthlypeo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7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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